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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풍경이 멋졌던 강경 미내다리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긴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모양를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다리의 강둑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모양과 갈기가 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수로정비에 따라 물길이 바뀌어 현재는 제방 제내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8년 완전해체하여 2003년 보수정비 하였다.
이 다리는 3개의 홍예(虹예)로 이루어진 석교(石橋)로 처음에는 평교였다. 3개의 홍예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은데,

받침은 긴 장대석(長臺石)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홍예석을 돌려 만든 형식이다.

가운데 홍예의 정상부 종석(宗石)에는 호랑이 머리를 선각(線刻)하였고 북쪽 홍예의 정상에는 용머리를 새겼으나,

남쪽 정상에는 장식이 없다. 부근 암반에 은진미교비(恩津渼橋碑)가 있었는데 파손되어 근년(近年)에 부여박물관으로 옮겼다.

비문에 의하면 이 다리는 조선(朝鮮) 영조(英祖) 7년(1731) 강경촌(江景村)에 살던 석설산(石雪山) 송만운(宋萬雲) 등이 주동(主動)이 되어

 공사에 진력한 지 1년이 못 되어 완공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사용치 않고 있으며 길이는 30m, 폭 28m, 높이 4.5m이며 석재(石材)는 화강암(花崗岩)이다.
[출처:문화재청]